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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
지난 주 수요일인가, 필사하는 데 만년필이 나오지 않았다.
가방을 뒤졌지만, 여분의 리필용 잉크는 없었다.
잠시 멍하니 앞을 쳐다 보았다.
다시 가방을 뒤져 보았다.
만일을 위해 넣어 둔 볼펜이 있었다.
검정색.
지금까지 필사는 'BLUE BLACK'으로 했는데...
중간에 끊어진 부분부터 검정색 볼펜으로 다시 적어 나갔다.
페이지의 윗부분은 파란색 글자인데 그 아래로는 검정색 글자가 되었다.
만년필의 감촉과 볼펜의 감촉은 달랐다.
만년필은 둥근부분이 부드럽게 그려지듯 써졌는데,
볼펜은 종이를 조금 귺는 느낌으로 조금은 거칠게 써 졌다.
만년필은 종이 속을 조금 파고 들며 글자를 남기지만,
볼펜은 종이 위를 떠다니면 흔적을 남기듯 써졌다.
만년필은 문장을 적은 후 남겨진 잔해가 없이 깔끔하지만,
볼펜은 문장을 다 적기도 전에 조그만한 잔해를 종이에 남기며 지나갔다.
만년필은 글자가 조화를 이루며 적어졌지만,
볼펜은 글자와 글자가 부조화롭게 보였다.
그래도 적어야 하겠기에 남겨진 분량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한페이지를 적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와서 리필 잉크를 찾았다.
비어있는 튜브를 제거하고 새것으로 끼웠다.
종이에 몇 글자를 적자, 이전의 느낌이 바로 살아났다.
손은 펜의 감촉을 잊지 않았다.
눈도 펜이 만드는 캘리그라피 같은 필체를 다시 느꼈다.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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