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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전

by 데이터스토리 2017.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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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 : [을지문덕전]
작가 : 신채호 지음
약력 :

저자 : 신채호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1908년 신채호는 여성 계몽 잡지 『가정잡지』의 발행인이 됐고,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에 5월부터 8월까지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한다. 5월에는 『을지문덕』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했고 다음해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출간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신채호는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사상의 전파를 위해 『해조신문』를 발간한다. 1914년에 『조선사』의 저술을 시작한 신채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개토왕 왕릉 등 고구려 고적을 답사한다. 다음해 북경 도서관에서 『조선상고사』의 집필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또 박은식(朴殷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박달학원을 설립한다. 1919년 신채호는 임시정부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추대된다. 같은 해 『신대한』의 주필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글을 썼고 대한 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의 부단주가 된다. 다음해, 보합단(普合團)의 내임장으로 추대된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북경에서 김정묵(金正默), 박봉래(朴鳳來)등과 통일책진회(統一策進會)를 만들어 『통일책진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한다. 다음해 북경에서 조선 역사를 연구해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한다. 그리고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만들었고, 국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임시정부의 창조파로 활약한다. 다음해 관음사(觀音寺)에서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1925년에는 1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에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미발표 작품인 『전후 삼한고』를 쓴다. 1928년 대만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된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아 뤼순 감옥에서 복역한다. 다음해 『조선사연구초』가 동지들에 의해 서울에서 출판된다. 1931년에 그는 『조선일보』에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사』를 연재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한다. 1936년 2월, 신채호의 나이 57세,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한다.

1945년에는 신채호학사가 설립되었고, 다음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조선사』의 서문을 『조선사론』으로 표제하여 광한서림에서 출판한다. 1948년 『조선상고사』를 종로서원에서 발행했고, 1955년 단재유고출판회에서 『을지문덕』을 순 한글로 번역 출판한다. 1962년 신채호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7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단재 신채호 전집』이 발행되었다.


○ 선정이유 :

살수대첩의 속 내용과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수나라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었인가.


○ 책 내용:

을지문덕의 위대한 부분을 잘 부각시켜 주고 있다. 수나라와 3차례 접전에서 모두 승리를 한다. 한편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위해 수차례 출전을 하며 매번 진다. 이로 인해 국력이 기울어 결국 당나로 넘어가게 된다.
을지문덕은 고구려를 침범한 수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전략을 잘 수립했다. 우문술이 평양성으로 오기전 해군이 먼저 침공했다. 이 때도 크게 이겨 수양제를 다급하게 하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문술은 병사를 이끝고 평양성에 왔으나, 지원오기로 한 군대는 오지 않고 배고픔과 질병으로 철수하기에 이른다. 이 순간을 기다린 을지문덕은 성문을 열고 나와 살수에서 30만 대군중 2700명 만을 남기고 다 죽이는 전과를 세운다.

작가는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를 섬멸하는 내용에 대해 몇가지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역사적 진행과정으로 살수대첩을 설명한 것과,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진영에 가서 적의 동향을 파악 후 작전을 진행한 부분,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길지 않다. 짧게 되어 있고, 영웅적인 묘사에 치중하고 있어 아쉽다. 작가의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잘 적어주시고 살펴 주신 것은 대단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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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땅이 크다고 해서 그 나라가 큰 것도 아니고, 군사와 백성의 수가 많다고 해서 그 나라가 강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스로 크게 하고 스스로 강하게 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나라는 강대하게 되는 것이니, 아, 현명하구나, 을지문덕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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